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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덮개2

기쁨조미료25 2009. 9. 19. 20:06
출26:1-14 성막의 덮개Ⅱ

 

첨부파일 성막의덮개.pptx

 

 

 

 

 

 

제목:덮개(Ⅱ)

말씀:출 26:1-14

 

저번 주에 성막 덮개가 의미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성막이 4겹의 덮개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덮개란 성막의 지붕입니다.

 

성막은 4겹의 덮개로 덮었습니다.

 

맨 먼저 덮는 것이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짠 베실로 만든 세마포 덮개입니다.

 

그 위에 염소털로 짠 덮개를 덮었고, 세 번째 덮개는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이며,

 

맨 위 밖에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왜 한 가지로만 덮어도 될 것을 이렇게 네 겹으로 덮도록 하셨을까요?

 

거기에는 모두 복음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덮고 또 덮고 또 덮으시고

 

또 덮으시기에 우리들이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각 덮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제 1덮개인 세마포 덮개의 의미입니다.

 

출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말씀 그대로 성막을 첫 번째로 덮는 덮개는

 

4가지 색실을 꼬아 만든 상당히 아름다운 「천연색 천」입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 덮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청색은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색은 왕 되신 그리스도,

 

홍색은 고난당하신 그리스도, 백색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구원의 큰 사랑이 우리를 덮으시고 계십니다.

특이한 것은 그곳에 양날개를 활짝 편 두 그룹(천사)를 수놓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겠죠!

 

창세기 3장 24절에 보면 그룹은 맨 처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섬기면서 위에 있는 그룹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이처럼 세상 바깥에서는 도무지 이 성막 안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성막 안에 들어 와 있는 사람만이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성전 안에 들어온 성도에게만 경험되어지고,

 

깨닫게 되는 놀라운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으려면 성전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밖에만 머물면 그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경꾼의 자세로 관망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문을 열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고

 

말씀이 또한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밤이나 수박을 먹을 때 도 그렇습니다.

 

겉만 보아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겉은 보잘 것 없지만 그 겉을 벗기거나 깨고 속을 먹어보아야

 

그 과실의 진짜 맛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진리는 겉으로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진짜 맛을 알 수 없습니다.

10년, 30년, 아니 일생을 교회생활해도 진짜 맛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런 변화나 큰 기쁨이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여시고 주님의 구원의 큰 사랑으로 덮히시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 제2덮개인 염소의 털인데 고난의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앞서 4가지 색실로 공교히 짠 성막 덮개는 아름답기 그지없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시고 능력과 권능이 충만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염소의 털로 짠 2번 째의 덮개가 아름다움과 풍성함에

 

제1덮개인 세마포에 감추인 것처럼 이 땅 위의 삶은 처절하리만큼

 

고난과 가난과 치욕의 삶을 사셔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서 버림 받도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는 무명의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무명의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마굿간의 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었습니다.

 

목 마르셨고, 쉴만한 처소조차 없으셨고 두 벌 옷도 없으셨고,

 

무덤조차도 요셉 것을 빌어 사용하시었던 겁니다.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성소와 지성소를 덮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신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이시기에 우리는 다시는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추하고 부족하고 문제된 것들을 다 지셨습니다.

 

가난도 지셨습니다.

질고도 지셨습니다.

저주도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염소털 덮개는 축복의 장막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덮어씌우십니다.

셋째, 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써 예수님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출애굽 시 유월절 어린양은 암 양이 아니라 수양이었습니다.

 

「붉게 물들인」가죽은 피 흘린 어린양 가죽을 대신 한 겁니다.

 

자연적 피는 세월이 갈수록 탈색되고 변질되기 쉽기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하와가 범죄 했을 때

 

대신 죽었던 희생 동물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러나 이 가죽옷은 상징성은 있으나 실제로는 영원하지 못하여

 

아담 후예들의 죄와 허물을 가리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 어린양 되어서 대신 죽으심으로

 

단번에 뭇 백성들의 죄를 영원히 구속하신 겁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우리는 세상 죄를 지신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에서 속량함을 받아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주홍 같은 붉은 죄라도 흰눈처럼 깨끗이 씻어주시고

 

양털처럼 깨끗이 씻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너희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지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권력이나 어떤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인간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해를 끼치고 파괴하려던 사람들은 모두 실패하고 멸망 당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전 죄와 사망과

 

마귀에 종노릇하던, 옛사람은 죽이는 곳이요, 피와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거기서 용서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넷째, 제일 겉의 제4 덮개는 해달의 가죽으로 승리를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성소 안에서 위를 본다면 아름다운 천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색실로 공교히 짠 그룹들이 수놓아 있는 덮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밖에서 성소를 보았다면 「거무튁튁한」

 

해달의 가죽으로 덮인 지붕을 보게 될 겁니다.

해달이라는 짐승은 나일 강 유역에 많이 살고 있는 일종의 물개라고 합니다.

 

이 해달은 땅과 물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승리하는 활동이 능한 동물입니다.

 

그리고 털이 물에 강해서 비가 쓰며 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시험을 이기시는 능력의 예수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능력의 장막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도 사망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주님 때문에 환란과 핍박을 당하여도

 

그것을 넉넉히 견디며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셔서 우리와 만나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곳이 바로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생명을 걸고 세상을 이긴 자들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에 의해서 세계를 뜨겁게 품에 안는 기도가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해달의 가죽이 궂은비도 이슬도 바람도 햇빛도 다 이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다 이기게 하십니다.

또한 이 해달의 가죽은 질기기 때문에 주로 신발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 해달의 가죽은 그 색갈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성도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평가해 볼 때에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은 바라봅니다.

 

왼뺨 치면 오른뺨 돌려 대라고 그럽니다.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겉옷 달라면 속옷도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약한 집단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레닌이나 마르크스는 기독교를 가리켜

 

약자의 윤리를 가진 자들이라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까?

 

여러분이 약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약하기 때문에 구제를 하고,

 

약하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의 사랑을 베풀고,

 

구제와 봉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본향이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세상 것을 가지고 연연하지 않는 소망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하지 않습니다. 연약하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과 우리의 생명을 바꿀 만큼

 

우리의 존재가 귀하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부러워할 만한 존재가 바로 우리 성도입니다.

 

이 소망의 성도들의 모습, 성령이 함께 계시는 거룩한 전이기도 한

 

이 성도들의 모습,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8절 이하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다시 사는 자들“

 

이라고 성도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생동하는 이 성도의 모습이 다시금 회복하기를 주님은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속에 살지만

 

예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주님은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나 한 사람이라고 작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나 한 사람이라고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작은 불빛이지만 그 작은 불빛이 연합되어

 

전체를 밝히는 것처럼, 이 시간에도 세상의 험한 바다에서

 

헤메이는 이에게, 빛은 잃고 방황하는 이에게

 

진리의 등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성도는 땅끝까지 그 불빛을 밝혀야 합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국가와 민족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며 헌신할 수 있는

 

귀하고 존귀한 일군으로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우리들의 자녀들, 친구들, 이웃들, 친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전혀 안면도 없는 사람이지만 우연히 전도지를 전해주면서

 

"예수님 믿으세요" 한 마디 전해 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신앙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삶의 흔적 하나하나,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열망을 통해서 전해지는 신앙의 영향력을 지닌

 

성도가 되도록 오늘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덮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생명과 권세 고난과 부활로 인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겉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힘이 없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천국을 여는 열쇠와 엄청난 보화가 있습니다.

 

세상에 작은 불빛을 비추어 이 시간에도 세상의 험한 바다에서

 

헤메이는 이에게, 빛은 잃고 방황하는

 

이에게 진리의 등대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