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버마인 (Burmese) ![]() 버마인은 미얀마에서는 정치, 경제, 종교적 지도층이다. 미얀마는 쿠데타, 전쟁, 반란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1세기에 첫번째 버마 왕국 이래로 종족 분쟁과 정치적 불안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버마인들이 보다 평화로운 곳을 찾으려는 희망 속에서 태국으로 도망쳐왔지만 불행하게도 태국 역시 정치체제의 변화, 군사 혁명, 반란 등 자체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버마 피난민들은 태국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켰고, 안된 일이지만 그들은 계속되는 불안, 자기 방어, 괴로움,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 삶의 모습 태국의 비옥한 계곡이 쌀 농사를 크게 도와주는 한편, 울창한 산림은 버마인들에게 귀중한 자산인 재목을 주었다. 쌀농사는 그들의 본업이자 경제를 유지하는 기본적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소비와 상업, 두가지 모두를 목적으로 쌀 경작을 증대해 갔다. 버마인들은 관개 시설이 잘 된 경작지에서 이상적으로 쌀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그들은 또한 화전을 일구기도 했다. 화전을 일구려면 새 종자를 심기 전에 산야에 심긴 나무를 베고 불을 놓아야 한다. 또 무거운 쟁기를 끌기 위해 소와 들소(버팔로)를 사육한다.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은 버마인 가족 모두에게 주어진 매일의 임무다. 조금 큰 아이들은 조부모와 함께 있지만 아기들은 엄마가 데리고 나간다. 버마인 부락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옥을 볼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주로 땅 위에서 약간 높이 지은 튼튼한 마호가니 나무집에서 사는데 이 집은 두꺼운 판자로 마루를 깔고 지붕은 타일을 입혀서 지었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초가 지붕에 흙마루가 있는 대나무 집에서 사는데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이 마루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버마인의 집 안으로 신을 신고 들어가는 것은 최대의 실례로 간주된다. 부락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기구는 사원이다. 사원은 부락민들간의 화합을 상징하고 그들에게 매우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 버마인들에게는 씨족이나 혈통에 대한 인식이 없다.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이고 결혼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일은 드물다. 신혼부부들은 대개 결혼 후 처음 몇 년간 신부의 부모와 함께 살다가 2-3년 후 따로 살림을 낸다. 신앙 버마인들 사이에는 소승 불교(Hinayana)가 널리 퍼져있다. 불교의 전통적 목표는 "열반"(nirvana) 혹은 궁극적 평화로 들어가는 중도를 찾는 것이다. 버마인들은 이런 불교 신앙과 자신들의 정령 숭배(애니미즘,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을 혼합시키고 있다. 본래 이들의 정령숭배 사상은 "나트"(nats)라고 불리우는 악령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버마인들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다른 악령들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 이 나트를 달래면서 일생을 보낸다. 모든 버마인들의 집에는 부처상은 물론이고 정령들을 위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들의 불교 신앙에 따르면 죽음은 착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없으며 죽음은 단순히 한 인생에서 다른 인생으로 건너가는 것일 뿐이다. 불교 신자들은 착한 일을 적게 한 사람들은 마귀, 유령, 동물로 다시 태어나거나 저승에서 살게 된다고 믿는다. 필요로 하는 것들 버마인들은 평화를 찾아 자신들의 고향인 미얀마를 떠나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태국에서 역시 자신들이 열망하던 평화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줄 사랑을 품은 크리스챤들이 필요하다. 현재 두 개의 선교 기관에서 태국의 버마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로 인도된 버마인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뜨거운 기도와 효과적인 전도야말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열쇠다. 기도제목
![]() 참조: 통계 세계복음화 리서치센터의 최근 보고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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