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날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되게 상쾌하지요. 때문에 함박눈을 두고 많은 일화들이 생겨났지요. 사랑의 이야기, 효성의 이야기, 또 애국충정의 이야기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 난 거죠. 그런데 이 이야기와는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흑암의 땅 북한에는 생겨난 것입니다.
그 단편적인 실례로 북에서는 내리는 함박눈을 두고 폭음이 없는 핵 파편 조각이라 합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눈 오는 추운 날이면 굶주리고 헐벗은 국민이 그 내리는 눈 때문에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들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 폭음이 없는 자연산 핵폭탄 파편조각이라 하는 것이죠.
그런 말이 돌던 것이 함박눈 만나 됐으면 좋겠다. 이 말이 북한 전역에 날개돋인 듯이 퍼져 눈 내리는 날이면 한숨 쉬며 지내던 영혼들 마나라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내리는 함박눈 만나라며 좋겠다.”라고 말들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리는 비는 꿀물이라면 좋겠다.”라고들 말합니다. 북한 땅에 이 말이 퍼지게 된 것은 우리 막에서 성경공부하다 북에 다시 넘어가 전도활동 벌리다 함남도 고원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곽철운이라는 형제의 첫마디 말로 시작되어 북한 전역에 퍼진 것입니다.
곽형제가 아시아극동방송청취를 잘했는데 이따금씩 곽선희목사님이 방송설교에 출연할 때면 정말로 귀담아 듣군 하였습니다. 그래 제가 너 곽선희목사님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니 나 하구는 관계가 없는데 아버지에게서 언제인가 우리 집안에 관가성씨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어 혹시나 곽선희목사님이 아닐 가? 해서 목사님의 말씀을 청중 하여 듣는 다는 것입니다. 곽형제의 어버지 형제들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였는데 평안도지방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1946년도 소련군이 교회 탄압할 때 이에 대항해 싸우다 큰아버지가 소련군에 의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소련군은 북한 美治安을 관리하던 보안대를 시켜 곽형제의 큰아버지를 철사로 온몸을 얽어매놓고 나무에 못을 촘촘히 박은 몽둥이로 온몸을 때려 마지막 피 한 방울 남을 때까지 고통을 받다 죽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북의 보안대원들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다가 곽형제가 철이 들자 이야기해주더라는 겁니다. 결국 막 안에 모인 형제자매들의 가정역사를 보면 모두들 예수님과 관계있는 가정적 환경에서 노동당에 의해 복잡계층의 이름표를 달고 천대와 멸시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온 가정의 후손들이였다고 합니다. 유독 나만이 빨갱이의 뜨르르한 배경을 가지고 노동당의 품에 안겨 노동당이 물려준 젖꼭지를 빨며 살아온 놈 들이였지요. 이들을 멸시하고 탄압하는데 일선에 섰던 내가 이들에게 반공을 강요한다는 게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도 북한에서 살면서 기독교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여서 북에서 선전하는 대로 종교지도자들과 외국선교자들을 평가해왔는데 이들의 말을 들으니 전혀 딴 판국입니다. 북에서 선전한 것이 모두 거짓 이였던 것입니다.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패스미”란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지요.
이분이 해주에서 선교 사역 하실 때 과수원밖에 굴러 나온 사과를 12살난 어린이가 주워 먹었다 하여 사냥개를 추겨 물어뜯게 하고 나중에는 청강수로 이마에 ‘도적’이라 새겼다 우리가 어릴 때 선전한 거죠. 이 사람이 신천박물관이란 데서 관장을 했는데 언제인가 정치범으로 잡혀 갔다는 말이 돌았지요.
그래 난 그런 일에는 관심 없어 잘못한 일이 있어 잡혀갔겠지 생각했는데 이들이 하는 말이 신천박물관 관장이 말을 잘못해서 잡혀 갔다는 것입니다. 어느 해 성탄절 날 이분이 사람들 모인 앞에서 “야, 오늘은 성탄절이구나, 참, 어릴 때 성탄절만 되면 우리 선교사님이 성탄절 선물로 고무신이랑 말눈깔 사탕이랑 나누어 주던 일이 눈에 선하구나”라고 말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하다면 12살 철없는 소년이 사과 한알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었다고 개로 물어뜯게 하고 청강수로 이마에 도적이라고 새긴 원수를 이분이 그래 삼심여년동안 잊지 않고 우리선교사님이라 존경을 나타내 불렀겠습니까?
철천지원수라 해도 시원치 않겠는데 말입니다.
이분의 이름이 영재였는데 이분이 체포되자 북은 이런 연극을 조작한 것입니다.
6.25전쟁 당시 황해도 땅에 기어든 미제의 “패스미”놈에 의해 고통당한 영재소년을 죽이고 제 놈들이 길들인 가짜 영재를 영재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하며 이 가짜 영재가 미국의 간첩 노릇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난 사실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이들의 말들어보니 그야말로 빨갱이式 거짓말 이였던 것입니다.
참, 노동당의 하는 짓을 보면 온통 거짓뿐이니 그 거짓 때문에 오늘 날 저 땅이 쑥대밭으로 변한 게 아닙니까? 김정일 독재정권은 그 거짓말 때문에 헤어 못날 궁지에 빠지고 말입니다.
그럼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1996년 말경에 북한은 어려운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벼 그루터기를 가루 내어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벼 그루터기를 말리어 분쇄한 가루 70%에 옥수수가루 30%로 섞어 만든 국수였지요. 이 국수가 조금 생산되자 어떠한 간부가 강연회에서 이런 말 했습니다. “소가 왜 힘쓰는지 아는가? 풀을 먹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도 풀을 먹고 산다 해서 죽는 것도 아니며 또 힘을 쓰지 못한다는 과학적인 증명도 없다.”라고 말입니다. 더러운 놈들이지, 북한 국민을 의식가진 소나 말처럼 길들이더니 이젠 아예 풀 먹는 짐승으로 만들 작정을 단단히 한 거죠. 저 놈들은 산해진미만 먹으면서 말입니다.
이 말이 향간에 퍼지자 가뜩이나 구호를 외치는데 일등선수들인 북한 국민은 글쎄 노동당을 조롱하느라 그러하는지는 모르나 이런 구호를 외칩니다.
“소가 왜 힘쓰는지 압니까? 풀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포 여러분, 형제여러분, 우리 모두 소처럼 풀을 먹자!”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말이 한때 향간에 돌아 이 구호 외치는 자들을 잡아들이라고 보위부, 안전부사람들 되게 땀을 뺐지요. 그럼 여름엔 소처럼 풀을 먹는다 치고 눈 오는 엄동설한에는 뭘 먹고 소처럼 힘을 쓴단 말입니까? 언 땅을 뚜져 먹겠습니까? 허긴 소도 너무 배고프니 흙을 막 먹습니다. 참말이지 겨울만 되면 북한의 국민들 특히는 이 어린것들이 굶주리고 떨다 죽어가는 애처로운 생각에 도무지 잠을 이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북한에 넘어갔을 때 일입니다.
전 북한에 가면 언제나 생명보존을 위해 하루 한 끼, 그것도 제일 값이 싼 음식으로 사 먹 군 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수백만의 국민이 주림에 시달리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이들의 빈곤함을 외면하고 하루 두 끼 때 식을 외울 수 있습니까? 그러니 한 끼씩 먹고 절약한 돈을 굶주린 애들에게 먹을 거랑 사주며 축복기도 해주군 하였습니다. 그날도 전 점심참인지라 한 끼 때우려고 장마당에 나갔습니다. 장마당에 간 나는 국수 한 그릇 사들고 먹으려 하는데 열 살이나 되었을 파리한 어린 소녀애가 나에게 “국수 좀 주세요.”하는 것입니다. 그 소녀 애의 구걸에 젓가락질하다 말고 그를 쳐다보니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며 뒤 걸음 칩니다. 그런 애에게 “얘야, 이리 오너라, 아저씬 구걸하는 너를 욕하고 때리는 아저씨가 아니란다. 그러니 이리 오너라”했더니 소녀에 보기에도 내가 좋은 아저씨로 보였는지 내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국수 한 그릇을 안겨주며 먹으라 하니 소녀 애는 얼고 터서 까실까실한 두 손으로 국수그릇을 받아 물만 마시더니 나를 말끄러미 쳐다봅니다. 무슨 불행으로 부모를 잃고 사랑 없는 거리를 헤매며 구걸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애인지 애의 정상이 너무도 애처로워 금시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그 애를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 외면하자 국수장사 아줌마가 날 책망합니다. “아저씨, 저런 애가 이 장마당 안에 우글우글 끓는데 저 애에게 국수를 주면 어찌합니까? 아저씨가 국수를 저애에게 주웠다는 것만 알면 이 장마당안의 모든 꽃제비들이 다 아저씨에게 달려옵니다.”아주머니의 말에 난 다시 소녀 애를 바라보니 소녀애가 국수를 빼앗길까 두려워 어찌할 줄 모릅니다. 그런 애에게 “안심해라, 그리고 어서 먹어라”고 했더니 자기는 국수국물만 먹는 것으로 배부르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럼, 그 국수는 어찌해야 하니?”라고 물으니 폐허가 된 공장건물을 가리키며 저 안에 동생이 있는데 굶고 있는 동생을 이 국수 가져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저씨가 동생 먹을 음식을 또 사주겠으니 안심하고 먹으라 하며 억지로 소녀 애를 국수 한 그릇 먹였지요. 참, 기특한 소녀 애였답니다. 저는 국수물만 먹고 국수는 동생을 주려는 그 마음 얼마나 기특합니까? 난 소녀 애 동생에게 먹일 음식을 사가지고 동생이 있다는 공장 폐허 안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건물 안에 6명 정도 잘 수 있는 집을 가마니를 주어다 만든 것입니다.
자기들과 함께 하는 오빠들이 지은 집이라는 것입니다.
가마니때기를 들추고 집에 들어서니 두 명의 사내가 나를 바라봅니다. 얼마나 굶었는지 추위 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들 입은 것이란 몸에 걸친 단벌옷이 전부였답니다. 그들에게 난 음식을 나누어 먹이며 물었습니다. 너희들 먹을 것을 얻지 못할 땐 어찌하느냐? 고 말입니다. 내 말에 소녀 애의 동생이 아닌 사내가 허리를 졸라맨 노끈을 죄우는 시늉해보이면서 하루 굶으면 한번 죄이고 이틀 굶으면 두 번 죄이고 이렇게 죄이다보면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 함께 “허리띠가 우리에게는 먹을 거랍니다.”라는 거죠. 찬하에 허리띠가 양식이라니 동서고금에 그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는 이름을 북한 땅은 지어낸 것입니다. 일정시대 일본군에 �기여 만주벌판을 헤맬 때 허리에 띤 가족벨트를 삶아 먹으면서 ‘곤난의 행군‘을 했다며 주린 백성에게 이 모범을 배워 노동당의 뒤를 따라 ‘곤난의 행군도 아닌 곤난의 강행군‘이라는 구호를 높이 쳐들고 하라는 북한 땅이 시나리오를 써낸 걸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일은 그 뒤로 더 희한하게 벌어 진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있는데 3명의 사내아이들 거적때기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거꾸로 몸이 되게 눕는 것입니다. 잠잘 때 머리를 높여 베개 베는 것이 습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베개 비슷한 것을 엉덩이에 깔아 놓는 것입니다. 이상한 행동에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저씬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방식의 굶주림퇴치법도 모르는가, 라는 겁니다. 거꾸로 누워야 한술 얻어먹은 것이 천천히 배속에 흘러들어 오랜 기간 소화되니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 기막힌 일도 다 있지, 누구는 소화가 안 되어 약을 먹고 나중에는 배까지 째는데 소화가 되는 것이 두려워 거꾸로 누워있다니 이거야 어데 온전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상상이나 할 일입니까?
북한에 갔다 겪은 어린것들의 참상이 너무도 눈에 삼삼해 입안이 쓰거워 도무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원치 않았던 금식하며 하나님께 저 어린 것들을 살려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기도에 막 안의 형제자매들 서글픈 소리로 “야,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 눈이 모두 만나라면 좋겠다, 그러면 북조선아이들 저렇게 까지 험한 고생하지 않겠는데..”라는 것입니다. 참말이지 그때 곽형제의 말처럼 이 땅에 내리는 흰 눈이 모두가 만나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위에 기군이 없고 주림이 없는 세상이 모두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근이 없고 굶주림이 없고 병마의 고통이 없는 천국이 그립습니다. 하루 속히 우리 주님께서 북한 땅에 오시여 전쟁광증이 없는 평화의 나라로 개변시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 예수여 이아들의 기도에 응답하사 오시옵소서. 북한 땅에 오시옵소서. 오시어 주여, 이아들의 메마른 눈물주머니에 감사의 눈물 채워 주사 비애로 인해 말라터진 내 영혼의 눈을 적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