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은혜와 큰 은혜
얼마 전, 비전의 나눔과 휴식을 목적으로 미국 방문 결심을 하고 비용 마련을 위해 한 달에 조금씩 재정을 모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끊자 그 순간은 상당한 비용이 절약되었지만 막상 재정이 잘 축적되지 않았다. 그 기간 중에 유난히 선교사들이 많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조금 모일만하면 선교사들이 방문해서 모았던 재정이 푹 줄고, 또 조금 모일만하면 어렵게 사는 후배 목회자들을 만나서 모았던 재정이 푹 줄었다.
요새 북한에 대한 ‘퍼주기 논란’이 있다. 다행이 우리 부부 사이에 ‘퍼주기 논란’은 없다. 다만 아내가 나의 태도를 기꺼이 지지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우리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우리를 재정적으로 돕는 목회자는 하나도 없고, 우리가 도와야 할 선교사와 목회자만 수두룩하네요.” 그때 내가 말했다. “그것이 축복이에요. 그렇게 사니까 하나님이 우리도 채워주시는 거예요.”
성령 충만이란 간단히 말하면 ‘주님을 닮는 것’이다. 주님이 주는 삶을 사셨으면 나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받는 일에 몰입하면 점점 사단이 틈타게 되고, 주는 일에 몰입하면 점점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내 안에 주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생각도 달라지고, 언어도 달라지고, 사는 자세도 달라진다. 특별히 언어와 삶이 남을 위한 언어와 삶으로 바뀐다. 성령 받고 그런 변화된 모습을 갖추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이다.
은혜에도 작은 은혜가 있고 큰 은혜가 있다. 작은 은혜는 ‘분리의 은혜’이다. 그래서 작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 받았다고 하면 자신의 신앙과 영성과 은혜를 자랑하며 율법주의자의 길로 간다. 반면에 큰 은혜는 ‘감싸는 은혜’이다. 그래서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영성과 신앙과 은혜를 자랑하지 않고 남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작은 은혜가 아니라 큰 은혜이다.
어느 날, 프랜시스가 섬기는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 중에 누군가 죽을 훔쳐 먹자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열을 올리며 분개했다. “이런 괘씸한 자가 있나!” 그 모습을 보던 프랜시스가 말했다. “얘들아! 죽을 가져와라! 같이 먹자!”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금식 중에 죽을 먹다니요? 그래도 됩니까?” 프랜시스가 말했다. “얘들아! 죽 먹은 사람을 정죄하다가 있던 은혜도 다 없어지겠다. 이제 함께 죽을 먹고 다 하나가 되자!”
내 의로움이 남을 정죄하는 자리로 발전한다면 그 의로움을 버리는 것이 낫다. 차라리 내 의가 부족한 줄 아는 것이 훨씬 낫다. 은혜를 적게 받으면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지만 은혜를 크게 받으면 말과 행동이 놀랍게 달라진다. 그때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남의 허물을 덮어줌의 은혜’에서 “내 잘못입니다. 내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라고 하는 ‘남의 허물을 덮어씀의 은혜’로 발전한다.
ⓒ 글 : 이한규
얼마 전, 비전의 나눔과 휴식을 목적으로 미국 방문 결심을 하고 비용 마련을 위해 한 달에 조금씩 재정을 모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끊자 그 순간은 상당한 비용이 절약되었지만 막상 재정이 잘 축적되지 않았다. 그 기간 중에 유난히 선교사들이 많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조금 모일만하면 선교사들이 방문해서 모았던 재정이 푹 줄고, 또 조금 모일만하면 어렵게 사는 후배 목회자들을 만나서 모았던 재정이 푹 줄었다.
요새 북한에 대한 ‘퍼주기 논란’이 있다. 다행이 우리 부부 사이에 ‘퍼주기 논란’은 없다. 다만 아내가 나의 태도를 기꺼이 지지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우리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우리를 재정적으로 돕는 목회자는 하나도 없고, 우리가 도와야 할 선교사와 목회자만 수두룩하네요.” 그때 내가 말했다. “그것이 축복이에요. 그렇게 사니까 하나님이 우리도 채워주시는 거예요.”
성령 충만이란 간단히 말하면 ‘주님을 닮는 것’이다. 주님이 주는 삶을 사셨으면 나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받는 일에 몰입하면 점점 사단이 틈타게 되고, 주는 일에 몰입하면 점점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내 안에 주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생각도 달라지고, 언어도 달라지고, 사는 자세도 달라진다. 특별히 언어와 삶이 남을 위한 언어와 삶으로 바뀐다. 성령 받고 그런 변화된 모습을 갖추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이다.
은혜에도 작은 은혜가 있고 큰 은혜가 있다. 작은 은혜는 ‘분리의 은혜’이다. 그래서 작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 받았다고 하면 자신의 신앙과 영성과 은혜를 자랑하며 율법주의자의 길로 간다. 반면에 큰 은혜는 ‘감싸는 은혜’이다. 그래서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영성과 신앙과 은혜를 자랑하지 않고 남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작은 은혜가 아니라 큰 은혜이다.
어느 날, 프랜시스가 섬기는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 중에 누군가 죽을 훔쳐 먹자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열을 올리며 분개했다. “이런 괘씸한 자가 있나!” 그 모습을 보던 프랜시스가 말했다. “얘들아! 죽을 가져와라! 같이 먹자!”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금식 중에 죽을 먹다니요? 그래도 됩니까?” 프랜시스가 말했다. “얘들아! 죽 먹은 사람을 정죄하다가 있던 은혜도 다 없어지겠다. 이제 함께 죽을 먹고 다 하나가 되자!”
내 의로움이 남을 정죄하는 자리로 발전한다면 그 의로움을 버리는 것이 낫다. 차라리 내 의가 부족한 줄 아는 것이 훨씬 낫다. 은혜를 적게 받으면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지만 은혜를 크게 받으면 말과 행동이 놀랍게 달라진다. 그때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남의 허물을 덮어줌의 은혜’에서 “내 잘못입니다. 내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라고 하는 ‘남의 허물을 덮어씀의 은혜’로 발전한다.
ⓒ 글 : 이한규
출처 : † 세계제일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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